아들아 은혜로 살자! (누가복음 15:2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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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선종 작성일20-12-31 15:59 조회1,3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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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상속받아
멀리 나갔던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다 허비한 후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매일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상거지가 된 탕자를 조건 없이
용서를 하며 맞아줍니다.
세 가지 선물을 통해
공공연히 아들로 인정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과 명예도 회복시켜줍니다.
그리고 살진 소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이웃들과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런데 탕자가 돌아오고
잔치가 열리는 시간까지 그 형인 맏아들은
밖에 있어서 모 든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소식을 듣습니다.
만약 우애가 깊었던 형제라면
동생이 무사히 귀향했다는 안도감과 반가움으로
얼른 뛰어 집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격렬하게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잔치를 하다 말고
달려 나와 맏아들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자기는 수년 동안
종살이 하듯 집안 살림을 했고,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잔치를 해준 적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사실 이 맏아들은 동생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의 명예는 물론이고
인자함이나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의 재산을 동생보다
두 배로 차지하기 위해 집에 남아 있었던
이기적인 아들입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맏아들의 모습은 당시에 자기 의와 공적을 자랑하며
위선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특별히 동생이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가 잔치를 열어주는 것에 대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동생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은혜 베푼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율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맏아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으로 위로하며 잔치 참여를 권고하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의 맏아들은
당시대 교만한 종교인들의 표상이지만,
실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매일 은혜가운데 살지만 감사하지 않고 삽니다.
욕심에 따라 죄를 짓고 살면서도 신앙이라는
옷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상한 척 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바로 우리도 21세기 바리새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모든 일에 은혜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멀리 나갔던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다 허비한 후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매일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상거지가 된 탕자를 조건 없이
용서를 하며 맞아줍니다.
세 가지 선물을 통해
공공연히 아들로 인정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특권과 명예도 회복시켜줍니다.
그리고 살진 소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이웃들과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런데 탕자가 돌아오고
잔치가 열리는 시간까지 그 형인 맏아들은
밖에 있어서 모 든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소식을 듣습니다.
만약 우애가 깊었던 형제라면
동생이 무사히 귀향했다는 안도감과 반가움으로
얼른 뛰어 집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격렬하게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잔치를 하다 말고
달려 나와 맏아들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아버지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자기는 수년 동안
종살이 하듯 집안 살림을 했고,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잔치를 해준 적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사실 이 맏아들은 동생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아버지의 명예는 물론이고
인자함이나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의 재산을 동생보다
두 배로 차지하기 위해 집에 남아 있었던
이기적인 아들입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맏아들의 모습은 당시에 자기 의와 공적을 자랑하며
위선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특별히 동생이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가 잔치를 열어주는 것에 대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동생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은혜 베푼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율법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맏아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으로 위로하며 잔치 참여를 권고하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의 맏아들은
당시대 교만한 종교인들의 표상이지만,
실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매일 은혜가운데 살지만 감사하지 않고 삽니다.
욕심에 따라 죄를 짓고 살면서도 신앙이라는
옷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고상한 척 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바로 우리도 21세기 바리새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모든 일에 은혜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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