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작성일 22-09-0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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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카비 혁명의 발단
B.C.166년 하스몬가 맛다디아가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유대인과 헬라 관리를 살해하고
그의 다섯 아들과 추종자들이 숨는 일이 발생합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그들을 뒤쫓아 안식일에
어린아이와 여자를 포함해서 1천명을 학살합니다.
대학살에 충격을 받아 경건주의 운동가들인 하시딤들도
맛다디아 제사장 가문과 연합하게 되며
범국민적인 게릴라 항쟁인 마카비혁명이 시작됩니다.
보수파 유대인과 제사장 가문의 맛다디아가
그의 다섯 명의 아들과 함께 탄압에 무장궐기로 투쟁하여
결국 BC166년 안티오코스 4세에게 독립합니다.
이 마카비 혁명으로 약100년 간 유대는
독립국가가 되고, 이때 하스몬왕조가 탄생합니다.
◆ 마카비 혁명의 과정과 결과
맛다디아가 죽자 셋째 아들 유다가 후계자가 되는데
유다 마카비는 게릴라 전법으로
시리아의 대군을 물리치게 되면서
B.C.167년부터 164년까지 3년에 걸친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가 끝이 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자,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정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전절>로 오늘날 유대인들이 지키는
[하누카(Hanukkah)]입니다.
B.C.160년 유다 마카비가 죽자
마카비의 막내 동생 요나단이 지도자가 되었으며
셀루커스 왕조는 B.C.152년 요나단을
유대의 대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B.C.143년 셀루커스 왕조의 한 장군에게
요나단이 살해를 당하게 되고
둘째 아들 시몬이 대제사장직을 물려받습니다.
B.C.142년 셀루커스 왕인 데메트리우스 2세가
유대의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인정하게 되고
이때부터 유대는 80년간 정치적 독립시기를 맞이합니다.
◆ 하스몬 왕조
요한 힐카누스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는데 있다고 믿고
정복자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옛 에돔 왕국인 이두매 지역을 정벌하였으며
이때 개종한 사람이 바로 이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터입니다.
힐카누스는 31년에 걸쳐 정복과
화려한 통치를 하다가 B.C.104년에 죽습니다.
◆ 하스몬 왕조의 분열과 내전
요한 힐카누스의 죽음 후, 장자 아리스토불루스 1세는
통치체계를 왕정으로 바꾸었으며 하스몬 왕가에서
공식적으로 왕의 칭호를 사용한 첫 번째 왕이 됩니다.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1년간 통치로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야네우스가 왕이 되고 31년간 영토를
다윗 시대만큼 확장시켰으나 B.C.76년에 죽습니다.
야네우스가 죽자 아내 살로메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여자는 대제사장이 될 수 없기에
장남인 힐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섭정을 합니다.
살로메가 죽자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그의 형 힐카누스 2세를 제사장의 자리에서 쫓아내고
자신이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하는 자리에 오릅니다.
B.C.64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로마의 이익을 위하여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자녀들을 로마로 압송해갔고,
힐카누스 2세를 다시 대제사장의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두 형제의 6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정치적으로 유능한 안티파터는 품페이우스에게 신임을 얻어
두 아들(파사엘루스, 헤롯)과 함께 유대의 총독이 됩니다.
대제사장직과 왕의 통치권을 함께 가졌던 하스몬 왕조는
126년 만에 완전히 끝이 나고 유대의 권력은
이두매사람 헤롯의 손에 넘어가고 맙니다.
▼ 헤롯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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